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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역사 #8 — 18~19세기 수학 : 수학의 폭발적 성장

by 딩가캣 2026. 5. 20.

미적분 이후의 세계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발명한 이후, 수학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쥔 수학자들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문제들을 풀기 시작했어요.

18세기와 19세기는 수학의 역사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대였습니다. 천재들이 연이어 등장했고, 수학의 영역은 사방으로 뻗어나갔어요. 그 중심에 두 거인이 있었습니다. 오일러와 가우스예요.


오일러 — 역사상 가장 많은 수학을 쓴 사람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년)는 스위스 바젤 출신의 수학자입니다. 그는 단순히 위대한 수학자가 아니라, 수학의 역사에서 가장 다작한 수학자로 기록되어 있어요.

오일러가 평생 쓴 논문과 책은 약 900편에 달합니다. 이것을 모두 모으면 80권이 넘는 전집이 됩니다. 현재도 오일러 전집 출판 프로젝트가 완료되지 않았을 정도예요.

더 놀라운 것은 오일러가 말년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른쪽 눈은 28세에, 왼쪽 눈은 59세에 시력을 잃었어요. 그런데 시력을 잃은 이후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각적 방해가 없어지자 더 집중할 수 있었는지, 생산성이 더 높아졌다는 기록이 있어요. 구술로 논문을 받아쓰게 하면서 연구를 이어나갔습니다.

오일러가 수학에 남긴 것들

오일러의 업적을 나열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들만 추려볼게요.

오일러는 수학 기호를 표준화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쓰는 $f(x)$라는 함수 표기법, 원주율 $\pi$, 자연상수 $e$, 허수 단위 $i$를 수학 기호로 도입하거나 대중화한 것이 모두 오일러예요.

오일러 공식은 수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으로 꼽힙니다.

$$e^{i\pi} + 1 = 0$$

이 공식 하나에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개의 수, $e$, $i$, $\pi$, 1, 0이 모두 들어있어요. 처음 이것을 보면 왜 이게 성립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지만, 미적분과 복소수를 이용해 완벽하게 증명됩니다.

오일러는 그래프 이론도 창시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가 유명한데, 프러시아의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는 강을 가로지르는 7개의 다리가 있었어요. 각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너서 모든 다리를 지날 수 있느냐는 문제였죠.

오일러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 과정에서 그래프 이론이라는 새로운 수학 분야가 탄생했습니다. 오늘날 인터넷 네트워크, 소셜 미디어 관계망 분석, 내비게이션 경로 탐색 등에 쓰이는 수학이 바로 이것이에요.


가우스 — 수학의 왕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1777~1855년)는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재능을 드러냈어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1777~1855년)는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재능을 드러냈어요.

가장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가우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1부터 100까지 모든 수를 더하라는 문제를 냈어요. 아이들이 오랫동안 바빠지도록 만든 문제였죠.

그런데 가우스는 불과 몇 초 만에 답을 냈습니다. 5050이라고요.

어떻게 했을까요? 가우스는 1+100=101, 2+99=101, 3+98=101… 이런 식으로 양 끝에서부터 짝지으면 101이 50쌍 나온다는 것을 즉각 간파했습니다. 101 곱하기 50은 5050이에요.

이 일화가 사실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우스가 어릴 때부터 수학적 패턴을 꿰뚫어보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정17각형의 작도

가우스는 19세에 수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발견을 했습니다. 정17각형을 자와 컴퍼스만으로 작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거예요.

고대 그리스부터 수학자들은 자와 컴퍼스만으로 작도할 수 있는 정다각형이 무엇인지 연구했습니다.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오각형은 작도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어요. 하지만 정17각형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가우스는 이것을 증명하고 너무 기뻐한 나머지, 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해요. 원래는 언어학자가 될까 수학자가 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발견이 진로를 결정지었다는 거예요. 그는 이 발견을 너무 자랑스럽게 여겨 자신의 묘비에 정17각형을 새겨달라고 했습니다.

가우스가 이루어낸 것들

가우스의 업적도 어느 한 분야에 그치지 않습니다.

소수의 분포에 관한 연구, 복소수 평면의 체계화, 최소제곱법의 발명,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구상까지 수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 깊은 발자국을 남겼어요.

특히 가우스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지만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혁명적인 내용이라 학계의 반발이 두려웠다는 설도 있고, 완벽하게 다듬기 전에는 발표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라는 설도 있어요.


비유클리드 기하학 — 2,000년 만에 뒤집힌 상식

비유클리드 기하학

유클리드의 제5공리, 즉 평행선 공리를 기억하시나요? #3편에서 잠깐 언급했던 내용이에요.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며 그 직선과 평행한 직선은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2,000년 동안 수학자들은 이것이 당연한 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에 이 공리를 부정하면 어떻게 될지 탐구한 수학자들이 있었어요.

러시아의 로바쳅스키(Lobachevsky)와 헝가리의 보여이(Bolyai)는 각각 독립적으로, 평행선이 무한히 많이 존재하는 기하학을 만들었습니다. 구면이 아닌 말안장 모양의 곡면에서 성립하는 기하학이에요.

독일의 리만(Riemann)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 평행선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기하학을 만들었어요. 구면 위에서 성립하는 기하학으로, 지구 표면에서 두 경선은 적도에서 평행하지만 북극에서 만나는 것처럼요.

이것들을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현실에서 쓸모없는 수학적 장난"으로 여겨졌어요. 그런데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우주의 공간은 질량에 의해 휘어져 있어요. 이 휘어진 공간을 기술하는 수학이 바로 리만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이었습니다.

현실과 무관해 보였던 수학이 우주를 설명하는 언어가 된 거예요.


갈루아 — 21세에 결투로 생을 마감한 천재

갈루아 — 21세에 결투로 생을 마감한 천재

18~19세기 수학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극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에바리스트 갈루아(Évariste Galois, 1811~1832년)예요.

갈루아는 프랑스의 수학자로, 10대 시절부터 수학계를 놀라게 하는 발견을 했습니다. 5차 이상의 방정식은 근의 공식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 과정에서 군론(group theory)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수학 분야를 창시했어요.

그런데 갈루아의 삶은 너무 짧고 불운했습니다. 논문을 제출할 때마다 심사위원들이 분실하거나 이해하지 못해 거부당했고, 정치 활동으로 투옥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1832년 5월, 갈루아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결투에 나섰습니다. 결투 전날 밤,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을 예감했는지 밤새도록 자신의 수학적 발견들을 편지로 정리했어요. "시간이 없다"는 말을 여백에 반복해서 쓰면서요.

다음 날 결투에서 복부에 총을 맞은 갈루아는 이틀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이 스물하나였어요.

그가 마지막 밤에 쓴 편지는 훗날 수학자들에 의해 해독되었고, 군론이라는 새로운 수학의 시작을 알리는 문서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현대 대수학의 상당 부분이 갈루아의 그 밤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수학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18~19세기의 수학자들은 단순히 기존 수학을 발전시킨 게 아니었습니다. 수학이 무엇인지, 수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꿔놓았어요.

오일러는 수학의 언어를 표준화했고, 가우스는 수학의 깊이를 더했으며,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수학의 범위를 상상 이상으로 넓혔습니다. 갈루아는 짧은 생애 동안 미래 수학의 씨앗을 심었어요.

그런데 19세기 말, 이 모든 성장의 밑바닥에서 균열이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수학의 기초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난 거예요.

다음 편에서는 수학의 위기를 다룹니다. 러셀의 역설, 힐베르트의 꿈, 그리고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까지, 수학이 스스로의 한계와 마주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수학의 역사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좋아요와 구독으로 다음 편을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