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학 시험이라 하면 흔히 떠오르는 건 OMR카드, 객관식, 빨리 푸는 속도 경쟁이다.
정답 하나로 모든 사고 과정을 평가받고, '맞았냐 틀렸냐'로 점수가 갈린다.
그런데 이 방식은 수학이 가진 본질, 즉 생각의 흐름과 문제 해결의 전략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수학은 ‘정답’만큼 중요한 게 ‘과정’이다.
어떻게 문제를 읽고, 어떤 정보를 정리하며, 어떤 판단으로 풀이를 전개했는지가 핵심이다.
그런데 현재의 시험 구조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된다.
그래서 서술형 평가가 필요하다.
문제를 어떻게 접근했는지, 왜 이 방법을 썼는지, 어떤 수학 개념을 적용했는지를 서술하게 하면
학생의 이해 수준과 사고 방식을 훨씬 정밀하게 알 수 있다.
특히 느리지만 깊이 있게 생각하는 학생, 틀렸지만 의미 있는 사고를 한 학생도 평가받을 수 있다.
현실적인 벽: 서술형 평가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장에서는 서술형 평가에 대해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한다:
1. 교사의 업무 부담
서술형 문항 하나를 30명에게 출제하면, 30개의 서로 다른 답안을 모두 읽고,
기준에 맞춰 평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객관성을 유지하고 공정하게 채점하는 일은 매우 고된 일이다.
특히 정답이 없는 주관적 풀이가 많을 경우, 교사 스스로도 혼란스러울 수 있다.
2. 채점 기준의 불명확함
정해진 풀이가 아닌 다양한 접근을 허용하면,
“이 풀이를 몇 점으로 줘야 하지?”라는 고민이 생긴다.
명확한 루브릭 없이 채점을 하다 보면 오히려 불공정한 평가가 될 수 있다.
(루브릭은 어떤 과제를 평가할 때, 어떤 기준으로, 어떤 수준으로 평가할지를 명확히 정리한 표야.)
3. 학생과 학부모의 불신
서술형은 감점 사유가 명확하지 않으면, 결과에 대한 불신이 생긴다.
“왜 우리 아이는 이 문제에서 3점밖에 못 받았나요?”
이 질문에 교사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으려면,
체계적인 기준과 설명 가능한 근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을 열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서술형 평가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려면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바뀌어야 할 점들이 있다.
1. 단순한 서술형이 아닌 ‘부분 서술형’ 부터 도입하기
전면 서술형은 부담이 크다.
하지만 단답형과 서술형의 중간 지점인 ‘간단한 설명형 문항’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예: “이 풀이에서 어떤 공식을 사용했는지 쓰시오.”
이런 문항도 사고 과정을 드러내는 좋은 시작점이다.
2. 루브릭 기반 채점 기준 마련
‘맞으면 5점, 틀리면 0점’이 아닌
부분 점수를 세분화한 루브릭을 만들어야 한다.
‘개념은 맞음’, ‘전개는 미흡’, ‘계산 실수 있음’ 등으로 나누면
학생도, 교사도 더 신뢰할 수 있는 평가가 가능하다.
3. 평가 보조 인력과 시스템 도입
단순히 ‘교사가 다 해야 한다’는 구조는 오래 못 간다.
평가를 위한 보조 인력,
AI 채점 도구의 활용,
교사 간 공동 채점 체계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4. 학생이 평가 결과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피드백 제공
“왜 이게 틀렸는지”,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피드백이 있어야
서술형 평가는 단순 점수를 넘어 성장의 기회가 된다.

수학, 정답보다 사고를 묻는 평가로
수학은 계산의 과목이 아니다.
그건 도구일 뿐, 수학은 사고를 훈련하는 언어다.
서술형 평가는 그 사고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물론 아직은 부족하다.
시간도, 인력도, 시스템도.
하지만 지금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정답을 잘 고른 아이만 칭찬하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놓치게 된다.
시험은 평가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길잡이여야 한다.
수학이 학생들에게 상처가 아닌 성취의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그 시작이 바로, 서술형 평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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