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학 시험이라고 하면 대부분 비슷한 장면을 떠올린다.
OMR 카드, 객관식 문항, 정해진 시간 안에 얼마나 빨리 풀었는지가 성적을 가르는 시험장 풍경.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정답을 골랐는지 아닌지가 전부가 된다.
한 문제에 담긴 수많은 생각의 갈래는 동그라미 하나로 압축되고, 결과는 ‘맞음’과 ‘틀림’으로 단순화된다.
그런데 이 방식은 수학이 가진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수학은 원래정답보다 생각의 흐름이 먼저인 학문이다.
문제를 어떻게 읽었는지, 어떤 정보를 중요하다고 판단했는지,
왜 그 방법을 선택했는지. 이 모든 과정이 수학의 핵심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험 구조에서는 그 과정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평가 대상에서 빠져 있다.
그래서 수학 시험은 점점 사고를 묻는 자리가 아니라 정답을 빠르게 고르는 경쟁이 된다.
이 지점에서서술형 평가의 필요성이 등장한다.
수학은 ‘정답’보다 ‘과정’을 묻는 과목이다
서술형 평가는 문제를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드러내게 한다.
왜 이 공식을 썼는지, 어디서 판단이 갈렸는지, 어떤 개념을 적용하려 했는지가 글로 남는다.
이 과정은 학생의 이해 수준을 훨씬 정밀하게 보여준다. 같은 정답이라도 누군가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 풀고,
누군가는 외운 절차를 그대로 적용했을 수 있다.
객관식에서는 이 차이가 보이지 않지만, 서술형에서는 분명히 드러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느리지만 깊이 생각하는 학생들이다. 정답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사고를 한 학생,
중간까지는 정확하게 이해했지만 마지막 계산에서 실수한 학생도서술형에서는 평가받을 수 있다.
이런 평가가 가능해질 때 수학은 비로소‘틀리면 끝나는 과목’이 아니라 ‘생각하면 남는 과목’이 된다.
하지만 서술형 평가가 어려운 이유도 분명하다
이상적으로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현장에서는 서술형 평가가 쉽게 도입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매우 현실적이다.
1. 교사의 업무 부담
서술형 문항 하나를 30명의 학생에게 출제하면 30개의 서로 다른 답안을 읽어야 한다.
풀이의 방향도, 표현 방식도 모두 다르다.
그 하나하나를 기준에 맞춰 평가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특히 정답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문제일수록교사는 더 큰 부담을 느낀다.
이 풀이를 인정해야 할지, 어디까지 점수를 줄 수 있을 지매 순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2. 채점 기준의 불명확함
다양한 풀이를 허용할수록 채점은 더 어려워진다.
“이 풀이를 몇 점으로 줘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교사 스스로도 흔들릴 수 있다.
명확한 기준 없이 채점을 하면 오히려 평가의 공정성이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서술형 평가에는 반드시 루브릭이 필요하다.
어떤 개념이 드러났는지, 전개는 어느 수준인지, 계산 실수는 어느 정도로 감점할지 미리 정리된 기준 말이다.
3. 학생과 학부모의 불신
서술형 평가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신뢰다. 감점 사유가 명확하지 않으면 결과에 대한 불신이 생긴다.
“왜 이 답은 3점이고, 저 답은 5점인가요?”이 질문에 교사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서 술형 평가는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서술형 평가를 완전히 포기하는 건더 큰 문제를 남긴다.
그건 곧사고 과정을 평가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그래서 필요한 건이상적인 서술형이 아니라 현실적인 서술형이다.
1. 전면 도입이 아닌 ‘부분 서술형’부터
모든 문제를 서술형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단답형과 서술형 사이에 있는 간단한 설명형 문항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풀이에서 사용한 공식을 쓰시오.”
“이 단계에서 필요한 개념을 설명하시오.”
이런 문항만으로도 사고 과정은 충분히 드러난다.
2. 루브릭 기반의 채점 기준 정착
‘맞으면 5점, 틀리면 0점’이 아니라
과정을 기준으로 점수를 나누는 방식이 필요하다.
개념 이해, 전개 과정, 계산 정확도 등을 분리해서 평가하면
학생도 결과를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3. 평가를 혼자 떠안지 않는 구조
서술형 평가는 교사 개인의 헌신만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
공동 채점, 평가 보조 인력, AI 채점 도구의 보조적 활용 등구조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4. 점수로 끝나지 않는 피드백
서술형 평가의 핵심은 점수가 아니라 피드백이다. 어디까지 이해했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를 알려줄 때 평가는 성장을 위한 도구가 된다.
수학, 이제는 정답보다 사고를 묻는 평가로
수학은 계산의 과목이 아니다. 계산은 수학의 일부일 뿐이다.
수학은 생각을 훈련하는 언어이고,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기르는 도구다.
서술형 평가는 그 사고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평가 방식이다.
물론 아직은 부족하다. 시간도, 인력도, 시스템도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정답을 잘 고른 아이만 칭찬하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놓치게 된다.
시험은 줄 세우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성장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수학이 학생들에게 상처가 아니라 성취의 경험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 시작이 서술형 평가일지도 모른다.
'수학이 좋아지는 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일차함수는 포기의 시작이 아니라 이해의 출발점이다|중2 수학의 전환점 (0) | 2025.11.12 |
|---|---|
| 중3 -1학기, 수학 선행이 멈추는 지점 — 그 벽의 정체는 무엇인가? (0) | 2025.07.04 |
| 수학이 알려준 나의 가능성 – 자기 효능감의 언어로 수학을 다시 보다 (2) | 2025.07.02 |
| 머리 나쁜 아이들이 문제일까, 수학 교육 방식이 문제일까? (1) | 2025.07.01 |
| 머리가 느린 아이일수록 수학을 해야 하는 이유 (0) | 2025.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