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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좋아지는 글들

왜 한국은 이 길을 선택했는가-시험 중심 수학교육

by 딩가캣 2026. 1. 2.

시험 중심 수학교육은 어떻게 ‘정답’이 되었을까

시험 중심 교육이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공정성’이었다.

 

한국의 수학교육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는 늘 비슷하다. 시험, 점수, 속도, 줄 세우기. 그리고 그 뒤에는 “왜 이렇게까지 시험에 집착하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대개 이 질문은 비판으로 곧장 이어진다. 시험은 나쁘고, 객관식은 사고를 망치고, 수학은 상처가 되었다는 이야기들. 하지만 이 글은 그 비판에서 출발하지 않으려 한다.
이 글의 질문은 조금 다르다.

왜 한국은 이 방식을 선택했는가?

시험 중심 수학교육은
정말 단순히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그 시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선택이었을까.


시험은 ‘악’이 아니라 전략이었다

전쟁 직후의 한국은 모든 것이 부족한 사회였다. 학교도, 교사도, 교재도, 시간도. 무엇보다 사람을 오래 키울 여유가 없었다.

빠르게 인력을 선별해야 했고, 빠르게 교육해야 했으며, 빠르게 성장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바로 시험이었다.시험은적은 자원으로 많은 사람을 비교적 공정하게 선발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출신, 배경, 인맥 보다 문제 풀이 능력이 기준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수학은 이 구조에 가장 잘 맞는 과목이었다. 정답이 명확하고, 채점이 빠르며, 대량 평가가 가능했다. 그래서 수학은 ‘사고를 기르는 과목’이기 전에 선별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

공정성이라는 이름의 합리성

시험 중심 교육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공정성’이었다. 정답이 정해진 문제, 같은 시간, 같은 기준. 이 구조는
누군가에게 불리하게 보이기보다 오히려 신뢰를 얻었다. 적어도 “누가 마음대로 평가했다”는 의심은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수학은 말보다 숫자가, 설명보다 결과가 더 믿을 수 있는 언어처럼 여겨졌다.
사회 전체 가속도와 결과를 중시하던 시기, 이 선택은 충분히 합리적으로 보였다.

잠깐, 이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한국 교육의 문제’로만 받아들이면이 글은 쉽게 비판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시험 중심 수학교육은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선택이라기보다, 전쟁 이후 빠른 재건과 산업화를 경험한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선택해온 방식에 가깝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인력을 선별해야 했고, 한정된 자원 속에서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했던 사회에서 표준화된 시험은 가장 효율적인 도구였다. 이 과정에서 시험은 억압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의 장치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그 중심에 수학’이 놓이게 되었을까. 이 역시 우연은 아니다. 수학은 정답이 비교적 명확하고, 채점이 빠르며, 대규모 평가에 유리한 과목이다. 언어 능력이나 배경 지식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는 점에서 가장 중립적으로 보이는 선별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수학은 사고를 기르는 학문이기 이전에 공정성을 구현하기 위한 언어로 선택되었다. 이 선택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아니었고, 당시의 조건 안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문제는 그 선택이 틀렸다는 데 있지 않다. 그 구조가 너무 오래 유지되었다는 데 있다.

문제는 ‘틀렸음’이 아니라 ‘지속’이었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시험 중심 수학교육은 무책임한 선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대의 조건 안에서는 상당히 현실적인 전략이었다.

문제는 그 전략이 너무 오래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산업화 초기의 기준은 지금의 사회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험 구조는 거의 변하지 않았고, 수학은 여전히 빠르게 풀수록 좋은 과목으로 남아 있다.

사고의 깊이보다 속도가,

질문보다 정답이,

과정보다 결과가 계속해서 우선된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시험에 의존하는 모순적인 구조 안에 서 있다.

 

이 글은 시험 중심 수학교육을 옹호하려는 글도, 무너뜨리려는 글도 아니다.

다만 이 구조가 어디서 왔는지를 차분히 이해하려는 시도다.

그래야만 다음 선택에 대해 조금 더 정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시대가 바뀌었는데, 질문은 바뀌지 않았다.

 이 구조가 학생의 사고방식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왜 ‘지그재그 사고’ 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무언가를 비판하기 전에는 상황의 배경과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 이해 뒤에야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