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무언가를 배울 때 자연스럽게 직선을 떠올린다. 시작점이 있고, 목표가 있으며, 그 사이를 가장 빠르게 잇는 길이 좋은 길이라고 배워왔다.
수학은 특히 그렇다. 문제를 읽고, 공식을 떠올리고, 계산을 거쳐, 정답에 도달하는 과정.
이 흐름이 매끄러울수록 우리는 그 학생을 “수학을 잘한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수업을 하다 보면이 직선의 이미지가 자는구먼 흔들린다.
아이들은 좀처럼 곧게 가지 않는다. 멈추고, 되돌아가고,
전혀 다른 계산을 해보고, 아까 쓴 풀이를 지우고 다시 쓴다. 우리는 이 모습을‘헤맨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대개는 그 헤맴을 줄여주려 한다.
더 빠른 길을 알려주고, 틀린 생각을 정리해 주고, 지그재그를 직선으로 펴 주려고 한다.
하지만 정말 그게 배움에 도움이 되는 걸까.
지그재그는 실수의 흔적이 아니라 사고의 움직임이다
아이의 풀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그재그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생각했고, 그 생각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고, 그래서 방향을 바꾸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겉으로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답이 늦고, 풀이가 지저분하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이 스스로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감각은 공식을 외워서는 얻을 수 없다.
누가 대신 설명해줘도 대신 생겨나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생각해 보고, 틀려보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서 만 조금씩 만들어진다.
지그재그는 바로그 감각이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는 언제부터 돌아가는 길을 틀렸다고 배웠을까
학교에서의 평가는 대부분 결과 중심이다.
맞았는지, 틀렸는지, 시간 안에 풀었는지
이 구조에서는 과정이 설 자리가 거의 없다.
돌아간 흔적은 지워야 할 것으로 취급되고, 다른 접근은 불필요한 시도로 간주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점점 배운다.
생각하지 않는 법을.
질문을 멈추는 법을.
이미 검증된 길만 따라가는 법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이해했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대부분 이런 길에서 오지 않는다.
헷갈렸던 지점, 이상하다고 느낀 계산, 계속 마음에 걸리던 질문 하나가 어느 순간 연결되면서 이해가 만들어진다.
그 이해의 경로를 다시 그려보면, 거의 언제나
지그재그다.
zag로 가기 위해 zig를 거쳐야 하는 이유
곧장 정답으로 가는 길은 안전하다.
이미 누군가가 닦아 놓은 길이고, 틀릴 위험이 적다.
하지만 그 길은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선택이 필요 없고, 의심이 필요 없으며, 왜 그런지 묻지 않아도 된다.
반면 지그재그의 길은 불안하다.
계속해서 선택해야 하고,
계속해서 판단해야 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래서 지그재그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효율적이지 않아 보인다.
때로는 틀린 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사고는 깊어진다.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정답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조금씩 만들어진다.
지그재그를 허용하는 순간, 수학의 성격은 바뀐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수학 수업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틀린 답을 고치기 전에그 생각의 경로를 따라가 보면, 의외로 중요한 직관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직관은 당장은 쓸모없어 보여도,
다음 단원에서, 혹은 전혀 다른 문제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지그재그를 허용한다는 것은 틀림을 방치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사고의 과정을 끝까지 보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이때부터 수학은 정답 맞히기 경쟁이 아니라, 생각을 연습하는 시간이 된다.
지그재그로 가는 길은 보기에는 불안정하다.
속도도 느리고, 결과도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는
원래 그런 방식으로 자란다.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되돌아가고, 다시 질문하며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그 과정을 지워버린 수학은 너무 얇고, 너무 빠르며, 너무 차갑다.
혹시 지금 수학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혹은 아이의 풀이가 자꾸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지그재그를 조금만 더 지켜봐도 좋겠다.
지그재그는 틀린 길이 아니라, 생각이 자라고 있다는 흔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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