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지를 보다 보면 가끔 이런 문제가 나온다.
제곱근, 루트, 0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개념을 묻는 문제.
계산도 어렵지 않고, 공식도 복잡하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이 문제 앞에서 멈춘다.
“이건 배웠는데요…”
“헷갈려서요…”
아이의 말은 틀리지 않다.
정말로 배웠다.
다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 채 지나왔을 뿐이다.


이런 문제는 계산 능력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계산을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 딱 하나를 묻는다.
너는 ‘제곱근’이라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니?
여기서 많은 아이들이 무너진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는 이것이다.
“제곱근은 ±가 붙는 거잖아요.”
“루트는 플러스 마이너스 아닌가요?”
이 말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리다.
문제는 아이들이 그 차이를 배운 적이 없다는 데 있다.
‘제곱근’이라는 말과
‘√’라는 기호는
사실 같은 말이 아니다.
제곱근은
어떤 수를 제곱했을 때 그 수가 되는 모든 수를 말한다.
그래서 49의 제곱근은 7과 -7, 두 개다.
하지만 √49는 다르다.
√는 항상 양의 제곱근만을 뜻한다.
그래서 √49는 7이다.
이 차이는 아주 작아 보이지만,
이 차이를 놓치는 순간
문제는 더 이상 풀 문제가 아니라
찍는 문제가 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아이들이 정의로 배우지 않고
문제 유형으로만 수학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나오면 이렇게 풀어.”
“루트 나오면 ± 붙여.”
“시험에 자주 나와.”
이 말들은 빠르다.
하지만 아이의 머릿속에는
개념이 아니라 반사적인 반응만 남는다.
그래서
“√144는 ±12이다” 같은 문장을 보면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루트니까 ±겠지’ 하고 넘어간다.

또 하나, 아이들이 자주 흔들리는 지점이 있다.
바로 0이다.
“제곱하면 커지잖아요.”
“제곱해서 0이 되는 수는 없잖아요.”
이 말도 어딘가 맞는 것 같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0은 제곱해도 0이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은
‘제곱 = 커진다’는 이미지로만 기억한다.
이건 계산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개념을 말로 설명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문제를 틀린 아이를 보면서
‘기초가 약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아이는
정의로 생각하는 수학을
배울 기회가 없었구나.
수학은 원래
공식을 외워서 빨리 푸는 과목이 아니다.
말을 이해하고,
개념을 구분하고,
왜 그런지를 생각하는 언어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일찍
속도와 정답만을 요구했다.

이런 문제를 틀렸다는 이유로
아이를 ‘수학이 안 되는 아이’로 분류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문제집이 아니라
이런 질문일지도 모른다.
“루트랑 제곱근은 왜 다를까?”
“0은 왜 제곱해도 그대로일까?”
“왜 √는 항상 양수일까?”
이 질문을
한 번이라도 스스로 말해본 아이는
다음부터 같은 문제를 틀리지 않는다.
수학을 포기하게 만드는 건
어려운 계산이 아니라
설명받지 못한 개념들이다.
그리고 그 개념들은
지금이라도
천천히, 말로, 다시 배울 수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을
아직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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