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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좋아지는 글들

왜 아이들은 ‘이런 문제’를 풀지 못할까— 계산이 아니라, 개념이 무너진 자리에서

by 딩가캣 2025. 12. 24.

 

 

시험지를 보다 보면 가끔 이런 문제가 나온다.
제곱근, 루트, 0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개념을 묻는 문제.
계산도 어렵지 않고, 공식도 복잡하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이 문제 앞에서 멈춘다.

“이건 배웠는데요…”
“헷갈려서요…”

아이의 말은 틀리지 않다.
정말로 배웠다.
다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 채 지나왔을 뿐이다.


 

 

이런 문제는 계산 능력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계산을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 딱 하나를 묻는다.

너는 ‘제곱근’이라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니?

여기서 많은 아이들이 무너진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는 이것이다.

“제곱근은 ±가 붙는 거잖아요.”
“루트는 플러스 마이너스 아닌가요?”

이 말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리다.
문제는 아이들이 그 차이를 배운 적이 없다는 데 있다.

‘제곱근’이라는 말과
‘√’라는 기호는
사실 같은 말이 아니다.

제곱근은
어떤 수를 제곱했을 때 그 수가 되는 모든 수를 말한다.
그래서 49의 제곱근은 7과 -7, 두 개다.

하지만 √49는 다르다.
√는 항상 양의 제곱근만을 뜻한다.
그래서 √49는 7이다.

이 차이는 아주 작아 보이지만,
이 차이를 놓치는 순간
문제는 더 이상 풀 문제가 아니라
찍는 문제가 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아이들이 정의로 배우지 않고
문제 유형으로만 수학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나오면 이렇게 풀어.”
“루트 나오면 ± 붙여.”
“시험에 자주 나와.”

이 말들은 빠르다.
하지만 아이의 머릿속에는
개념이 아니라 반사적인 반응만 남는다.

그래서
“√144는 ±12이다” 같은 문장을 보면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루트니까 ±겠지’ 하고 넘어간다.

 

또 하나, 아이들이 자주 흔들리는 지점이 있다.
바로 0이다.

“제곱하면 커지잖아요.”
“제곱해서 0이 되는 수는 없잖아요.”

이 말도 어딘가 맞는 것 같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0은 제곱해도 0이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은
‘제곱 = 커진다’는 이미지로만 기억한다.

이건 계산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개념을 말로 설명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문제를 틀린 아이를 보면서
‘기초가 약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아이는
정의로 생각하는 수학을
배울 기회가 없었구나.

수학은 원래
공식을 외워서 빨리 푸는 과목이 아니다.
말을 이해하고,
개념을 구분하고,
왜 그런지를 생각하는 언어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일찍
속도와 정답만을 요구했다.

이런 문제를 틀렸다는 이유로
아이를 ‘수학이 안 되는 아이’로 분류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문제집이 아니라
이런 질문일지도 모른다.

“루트랑 제곱근은 왜 다를까?”
“0은 왜 제곱해도 그대로일까?”
“왜 √는 항상 양수일까?”

이 질문을
한 번이라도 스스로 말해본 아이는
다음부터 같은 문제를 틀리지 않는다.


수학을 포기하게 만드는 건
어려운 계산이 아니라
설명받지 못한 개념들이다.

그리고 그 개념들은
지금이라도
천천히, 말로, 다시 배울 수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을
아직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