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수학을 직접 계산할 일이 거의 없다. 은행 업무도, 길 찾기도, 쇼핑도 손으로 무언가를 계산할 필요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 누르는 것으로 끝난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정말 수학 없이도 잘 살고 있는 걸까?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질문이 얼마나 표면적인 착각인지 금방 알게 된다.
보이지 않을 뿐, 지금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거의 모든 기술의 바닥에는 여전히 수학이 깔려 있다.
이 글은‘수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2025년을 살아가면서 내가 왜 다시 수학을 떠올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천천히 풀어보는 기록에 가깝다.
수학은 늘 필요보다 먼저 존재해 왔다
우리는 흔히 수학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학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반대에 가까운 장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수학은 대부분의 경우 필요를 설명하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는 단순한 셈을 넘어 비율과 반복 계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계산들이 당장 눈앞의 생활 문제를 넘어 미래를 대비한 사고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역시 마찬가지다. 그 거대한 구조물은 감각이나 경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정확한 각도, 일정한 비율, 그리고 반복 가능한 계산 체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업이다.
중국으로 시선을 옮기면 구장산술이라는 책이 등장한다.
이 책에는 오늘날 우리가 행렬이라 부르는 개념의 원형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그 개념의 이름을 몰랐지만, 이미 구조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 수학은 늘 이름보다 먼저, 정의보다 앞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작동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과 수학은 멀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로 가면 수학은 철학과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했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세상의 질서가 숫자의 조화로 설명될 수 있다는 진지한 믿음에 가까웠다.
플라톤은 수학을 감각의 세계를 넘어 이상적인 세계로 가는 언어라고 보았다. 그의 아카데미 정문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 들어오지 말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는 일화는 수학이 사고의 기본 도구였음을 보여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런 생각들은 다소 과장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수학은 단순한 계산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사유의 틀이었다.
수학자들은 왜 늘 조금 극단적으로 보일까
수학의 역사에는 이상할 만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에바리스트 갈루아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현대 대수학의 기초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이론은 지금도 수학 전공자들에게 쉽지 않은 내용이다. 파울 에르되시는 집도, 재산도 없이 전 세계를 떠돌며 수학 문제를 나눴다.
그에게 수학은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다. 그레고리 페렐만은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고도 상금과 명예를 모두 거절했다.
그의 선택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결과보다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2025년의 일상은 이미 수학 위에 놓여 있다
2025년의 수학은 교과서보다 스마트폰 안에서 더 자주 작동한다.
얼굴 인식 기술은 벡터와 행렬 연산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추천 알고리즘은 확률과 통계 위에서 선택을 반복한다.
자율주행차는 매 순간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스마트워치는 숫자를 통해 몸의 상태를 해석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이 모든 과정에서 수학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학은 이제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정답을 빨리 맞히는 수학보다 이야기로 이해하는 수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수를 통해 암호를 이야기하고, 피보나치수열로 자연과 예술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수학이 다시 사람의 언어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수학은 어렵기 때문에 멀어진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시험의 언어로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멀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학은 본래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려 애써온 가장 오래된 사고의 기록이다. 2025년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수학을 다시
계산이 아니라 생각의 도구로 불러올 필요가 있다. 정답을 찾기보다는, 질문을 품는 쪽으로.
그 지점에서 수학은 다시 우리 삶 가까이로 돌아온다.
'수학이 좋아지는 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그재그로 가는 길이 틀린 길일까-사고의 움직임, (0) | 2025.12.31 |
|---|---|
| 왜 아이들은 ‘이런 문제’를 풀지 못할까— 계산이 아니라, 개념이 무너진 자리에서 (0) | 2025.12.24 |
| 원기둥의 옆면 곡률과 전개도 가능성 (0) | 2025.11.16 |
| 🌀 피타고라스의 정리, 수학을 넘은 전설의 이야기 (0) | 2025.11.13 |
| 일차함수는 포기의 시작이 아니라 이해의 출발점이다|중2 수학의 전환점 (0) | 2025.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