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이 되면, 유난히 산이 가까워 보이는 날들이 있다.
멀리 있어야 할 능선이마치 한두 발짝만 더 가면 닿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 느낌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여 면대 부분은 고개를 갸웃한다.
“잘 모르겠는데?”
“원래 저기 있었잖아.”
“겨울이라 그냥 공기가 맑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이건 진짜 현상일까,
아니면 나만의 착각일까?
달 착시를 떠올리다
이 질문이 시작된 계기는의외로 ‘달’이었다.
달이 지평선 근처에 있을 때유난히 크게 보이는 현상,
이른바 ‘달 착시’는아직도 과학적으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은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으로 찍으면 달의 크기는 똑같다.
굴절 때문도 아니고,실제로 커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낮게 뜬 달을 분명히 크게 느낀다.
이건 빛의 문제가 아니라뇌의 해석 문제다. 비교 대상이 많아질수록, 거리 정보를 뇌가 다르게 해석하면서 크기가 달라 보이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다 보니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겨울 산이 가까워 보이는 느낌도
물리 현상이 아니라
인식의 문제일 수 있지 않을까?”
겨울이라는 조건
확실한 건 하나 있다. 겨울에는 시야가 유난히 선명한 날이 많다.
공기가 건조하고, 미세한 입자들이 적고,
하늘과 산의 경계가 또렷하다.
여름에는 습기와 연무, 아지랑이가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려준다.
멀리 있는 것은 멀리 있는 것처럼, 중간 거리에는 중간 거리의 흐림이 있다.
하지만 겨울 풍경은 다르다. 중간 단계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까운 것과 먼 것이한 화면 안에서 같은 선명도로 존재한다.
이때 뇌는 공간의 깊이를 판단할 단서를 조금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 결과, 거리를 실제보다 압축해서 해석할 가능성이 생긴다.
그런데 왜 나만 느낄까?
여기서 가장 솔직한 질문이 남는다.
왜 이 느낌은 나만 느끼는 것 같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풍경을 ‘거리’로 보지 않는다.
산은 그냥 배경이고, 하늘은 하늘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풍경을 볼 때 자꾸 구조를 본다.
앞과 뒤,
겹침,
깊이,
압축된 공간. 이건 예민함이라기보다 관찰 방식의 차이에 가깝다.
어떤 사람은 색에 민감하고,
어떤 사람은 소리에 민감하며,
어떤 사람은 공간과 거리 변화에
더 빨리 반응한다.
그래서 같은 풍경을 보고도누군가는 “맑다”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가깝다”라고 느낀다.
이건 착각일까?
‘착각’이라는 단어는 왠지 부정적으로 들린다.
틀린 인식, 잘못된 느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과학에서 말하는 착시는 거짓이 아니 라인식의 한 방식이다.
뇌가 제한된 정보 안에서 가장 그럴듯한 해석을 내린 결과다.
겨울 산이 가까워 보인다는 느낌도아마 그런 종류일 것이다.
산이 실제로 이동한 것도 아니고, 빛이 극적으로 휘어진 것도 아니다.
다만 겨울의 맑은 공기, 선명한 대비, 사라진 중간 거리 단서가 뇌로 하여금
“생각보다 가까운 공간”이라고
판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생각은 틀렸을까
나는 이제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겨울에 산이 가까워 보이는 느낌은
모두에게 동일한 과학 현상은 아닐지 몰라도,
충분히 설명 가능한
인간 인식의 한 장면이다.”
그리고 모두가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의 미 없는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남 들은 그냥 지나치는 감각에서
“왜?”라고 묻는 순간,
생각은 글이 되고
질문은 사유가 된다.
이 글은 정답을 말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겨울 산은 반드시 이렇게 보인다”라고 단정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가 느낀 감각을 아무 생각 없이 넘기지 않고, 의심하고, 비교하고, 조심스럽게 해석해보고 싶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나도 그런 느낌 받은 적 있어”라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는 잘 모르겠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둘 다 괜찮다.
이 글은 설득이 아니라 기록이니까.
겨울 산은 아마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산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계절과 공기, 그리고 질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달라짐을 느끼는 순간이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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